로마나에서 혼자 살기 시작한 이후, 거의 매주 주말에 도미니카 공화국 국내를 돌아다니며 여행 아닌 여행을 하고 있다. 대부분 가야하는 일이 있어서 수도인 산토도밍고를 갔던 것이지만, 생각해보면 주중에도 한주에 한번 이상은 차를 타고 몇시간씩 걸리는 거리에 다녀왔으니 나는 이 나라를 상당히 많이 돌아다닌 셈이다.
2주 전에는 El seibo(엘 세이보)에 살고 있는 Eli 언니가 이사하는걸 보러 갔었고, 지난 주에는 Mari 언니가 이사하는걸 보러 Bani(바니)에 갔다. 바니는 산토도밍고 서쪽에 있는 도시로 Guagua(구아구아_미니버스)로 40분 정도 걸리고 망고가 유명하다고 한다. 지도상 산토도밍고보다 약간 남쪽에 있어서 많이 덥다고 했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 살때 내가 이렇게 지도를 본 적이 있던가..? 싶다.. 웃겨 정말.)
어쨌든, 마리언니를 도우러 Cielo(씨엘로), Odilia(오딜리아)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바니에 가기로 했다. 언니는 산토의 외곽에 있는 삔뚜라 라는 곳에서 구아구아를 타라고 했지만 씨엘로의 집 근처에서 바니에 가는 구아구아를 본 우리들은 씨엘로 집 근처에서 구아구아를 탔다. 정류장이라고 씌여진 팻말도 없는데 사람들은 구아구아를 기다리고, 구아구아는 저 멀리에서부터 Cobrador(코브라도르_차장)가 행선지를 외치며 차를 세운다.
"Nosotros no somos china. somos coreana"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구 한국인이에요)
이 나라 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한국사람이라고 말하면 표정부터 바뀌면서 "아~꼬레아나!" 라고 말한다. 아수아에 가는 구아구아가 출발하기 전까지 코브라도르와 이야기를 했다. 꼬레아나라고 하면 줄줄이 소세지처럼 따라 나오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이긴 했지만.. 남한이냐 북한이냐, 여기에 온지 얼마나 되었냐 등등-
오전 9시도 안되었는데 햇볕이 뜨겁다. 전봇대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구아구아를 기다리다보니 "바니"를 외치며 오는 구아구아가 도착했다. 우리는 Express(엑스프레스_급행)를 타고 가려고 했기 때문에 몇번이나 이 구아구아가 엑스프레스가 맞냐고 물었다. 코브라도르가 엑스프레스가 맞다는 대답을 세번이나 했고, 우리는 구아구아 맨 뒷좌석에 앉았다. 운좋게 에어컨도 나오는 구아구아이다. 조금 뒤 키가 큰 백인계열의 아저씨가 구아구아를 탔는데 우리가 앉아있는 쪽으로 계속해서 걸어왔다. 맨 뒷좌석은 자리가 4개이고 우리는 셋이서 앉아있는데 아저씨가 이쪽에 앉는다고 하면 자리를 어떻게 비켜줘야하나 머리를 굴리며 있는 사이에 아저씨가 눈짓으로 안쪽에 들어가겠다고 신호를 보냈다. 나는 얼른 다리를 옆으로 비켜 길을 내줬는데,
"고맙습니다"
이 백인아저씨가 고맙습니다.라고 한국말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버린 우리가 소리를 질러가며 어떻게 한국말을 아는거냐. 그보다 더 놀란것은 어떻게 우리가 한국사람인 것을 아는거냐. 신기하기도 하고 모두가 치나라고 부르는 곳에서 한국어로 인사를 하는 아저씨가 고마웠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사람들과 오랫동안 일을 해와서 한국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한국말로 조잘조잘 떠드는것을 듣고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저씨가 들었을 한국말은..
"저 아저씨. 우리쪽으로 온다. 여기에 앉으려나봐. 어떻게하지? 내가 옆으로 가야하나??"
아저씨.. 설마 다 알아들은건 아니죠? ㅋㅋㅋ
그리고 자리가 없는데도 계속해서 사람을 태우는 구아구아. 다섯살 정도 되어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엄마와 함께 구아구아를 탔다. 그런데 이 아줌마, 4명이 앉은 맨 뒷좌석으로 계속해서 온다. 왜 오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옆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얼른 자리를 좁히고.. 잠시 잊었다. 이 나라 Carro(까로_승용차이지만 택시의 개념은 아니고 직진만 하는 대중교통수단)는 운전수를 제외하고 앉는 인원이 기본으로 앞자리에 2명, 뒷자리에 4명이다. 구아구아 맨 뒷좌석에는 당연히 5명정도는 앉아줘야 하는것이 상식인데 잠시 깜빡했다. 아줌마랑 아이가 앉고나니 자리가 좁았다. 아이들과 항상 잘 놀아주는 씨엘로와 오딜리아 언니는 벌써 이 꼬마애와 친해져서는 핸드폰 줄을 보여주고 같이 사진을 찍고 놀고 카메라를 보여주며 놀고, 나는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알지도 못했던 나라에 와서 처음보는 외국인 아저씨랑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 하는 지금 이 상황이 꼭 영화 속의 한 장면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분위기에 취해 혼자서 머릿속으로 배경음악도 깔아본다. 정말 여행을 가는 것 같다 :)
분명히 엑스프레스 구아구아라고 했는데 자꾸만 버스가 선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자리 아저씨가 이거 엑스프레스 아니었냐며 소리를 지른다. 아뿔사.. 코브라도르가 우리한테도 아저씨한테도 뻥을 친거다. 엑스프레스라고.. ;;; 그래도 에어컨도 나오고 요금도 85페소로 일반요금을 받고, 덕분에 재미있는 동행도 만났으니 그냥 넘어가야겠다. (엑스프레스를 타면 15페소를 더 내야하고, 15분 정도 빨리 갈 수 있다.)
바니에 도착할즈음 아저씨가 친구집을 찾는걸 도와주겠다고 해서 마리 언니한테 들었던 길에 조금 못 미쳐 내렸다. 내릴 때에는 구아구아 안에 타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이 내리는 양 다들 인사를 하고 난리도 아니다. 몇 발자국 걷지 않았는데 저 멀리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마리언니가 보인다.
바니 도착. 성공이다 :)
아저씨와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겨우 버스를 탄 것 뿐이지만, 우리들끼리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에 온 것 만으로도 뿌듯해할 수 있는것이 즐겁다. 서바이벌 깃발획득 게임을 하는 그런 기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