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9일>
오늘은 수요일, 작업장에 가는 날이다.
수요일마다 작업장에 가기 시작한지 3주가 되었다.
도자 작업장에서 같이 일하는 '라파엘'은 첫 주에만 경계태세를 갖추다가
저번주부터는 완전 자상남이 되셨다.
지난 주, 나를 너무 경계하는 라파엘 앞에서 야심차게 만들었던 오카리나는 소리가 안나고
뭔가 다른것으로 승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집에 와서 내 도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남은 흙으로 약간의 기법을 사용하여 학창시절 오브제 만들었던 것을 만들었다.
어렵지는 않지만 꽤 그럴 듯 해서 나름대로 만족스럽게 수요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 안에서 모기를 잡으려고 급히 일어나다가 발을 헛딛어 손으로 내리친 책 옆에 있다가
정작 보여주려고 한 경계심 충만한 라파엘한테는 보이지도 못한 채 운명을 달리했다. (꺅!)
약간은 의기소침하게 달랑 도장 하나를 들고 작업장에 갔는데
물레를 돌리고 있던 라파엘이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무섭게 왜 웃고 그러느냐고 물을 수는 없어서 자리를 잡고 장식을 위한 도장들을 만들고 있었다.
라파엘이 종이와 연필을 들고 오더니 자기의 어릴적 집에서 불리던 이름은 MIMI라고 했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가 듣고 있는데 '미미'를 일본어로 어떻게 적냐고 물어본다.
헉..! "나 한국사람이야" 라고 말하자 미안하다고 하는걸 보니 내가 어느나라 사람인지도 모르고 있었나보다.
그리고는 다시 '미미'를 한국어로 어떻게 적느냐고 물어보는데
내 이름 한자를 가르키며 이렇게 쓰는걸 말하는 거라고 했다.
얘기를 하다보니 이 사람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가 같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긴, 세 나라 모두 한자를 같이 사용하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꼬리 세운 고양이 같이 있다가 도움을 청하려 이렇게 웃어가며 물어보는 라파엘을 위해
아름다울 '미'를 두 번 적어주었다. 美美
오늘도 분위기 싸하게 있었으면 쌀 '미' 적어줄건데 봐줬다. ㅋ
이 글자는 같은 발음을 적은 것인데 뜻은 아름답다는 것이라고 말해줬더니 너무 좋아한다.
쌀 '미' 적어주고서 뜻은 쌀이라고 말해줬으면 어땠을까..?
내 옆에서 몇번을 연습해보고 석고작업으로 도장을 만들었다.
오.. 생각보다 예쁘다 :)
'美美'를 써 준 것에 대한 답례인지 자기 석고도 빌려주길래 나도 이름 도장을 다시 만들었다.
다음주에 가마를 땔 것이니 집에 가서 작업을 해가지고 오라며
흙을 싸주길래 손물레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집으로 왔다.
그리고 지난주는 너무 바빠서 흙을 꺼내볼 새도 없었다.
연이은 출장. 출장. 출장. 또 출장!!
결국 나는 어제 오후가 되어서야 부랴부랴 흙을 꺼냈다. -_-
뭘 만들어야되나 고민할 시간도 없다.
만드는 시간보다 흙이 완전히 건조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작은 악세사리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목걸이 메달을 만들었다.
동그란 모양을 잡고 가장자리를 장식하고 맘에드는 그림을 그리는 걸로 완성!!
그림 같기도한 한자를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을 생각하며 사랑 愛, 복 福, 도 써 주고..
내가 사랑하는 꽃들과 이들이 사랑하는 닭들을 잔뜩 그렸다.
해는 지고있고 학교 다닐적 과제하던 생각이 났다.
다른 과목보다 특히 도자는 시간 계산을 해서 과제를 해놓곤 했는데..
(그 시절이 조금은 그립다-)
어쨌든 장장 10시간 동안의 작업을 마무리 하고 오늘이 되었다.
밤새 어느정도 건조되겠지 생각했던 아이들은 어젯밤 그대로이고..;;;;
정말 난감한 마음으로 작업장을 향했다.
오늘은 좀 열심히 하고 와야지! 생각을 하며 미미(라파엘)가 먼저 집에 가더라도
남아서 작업을 하겠다! 생각하고 기사님한테도 오후 4시에 데리러 오라고 얘기를 해놓은 터였다.
미미는 나의 목걸이 메달들을 보고는 예쁘다고 좋아했다.
우리는 이로써 평화협정체결인가..?
오늘 만들어간 메달들을 라꾸로 굽기로 했다 :)
(나는 사실.. 한국에서도 라꾸가마를 때보지 않았다. 말로만 들었지...
역시.. 국비유학인가..?)
1시간 정도 불을 때고 꺼내보니 거뭇거뭇 색깔도 예쁘게 잘 나왔다.
덜 말랐던 것인지 몇개는 터지고.. ;;
맘에 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골라서 터지는 바람에 다시 비슷한 모양의 메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뭔가를 만들때면 나는 어딘가 다른 세상에 와 있는것 같다. (난 이 순간이 너무 좋다!)
작업을 하고 있자면 나를 구경하기 위해 이 학교의 다른 작업장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이 창문에 매달려있다.
한참 동안 열중하다가 고개를 들면 숨죽이고 나를 보는 하얀 눈들이 보인다.
처음에는 깜짝 놀랐었는데 이제는 그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보낼 여유가 생겼다.
오늘은 오후 4시까지 작업을 할 의지를 불태우며 왔건만,
오후 2시부터는 도자 작업장에서 학생들이 춤을 춘다고 한다. (완전 어이없..;;)
왜 그러느냐고 묻자 아직 수업이 없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그렇게 허가를 해줬다고 한다.
나의 작업에 대한 불타는 열정! (오랜만에 ㅠㅠ)은 이렇게 무너지고..
이미 12시는 넘어서 기사님을 부를 수도 없었다. (12시부터 2시까지의 점심시간은 철저하게 지킨다...;;)
결국 미미의 오토바이 뒤에 타고 무섭다고 소리를 지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다음주에도 가마를 땐다고 하니 예쁜 악세사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 :)
미미! 앞으로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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