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3일>
나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기타 배우기를 도미니카 공화국에 와서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적당한 취미생활이 필요한 나에게 기타를 배우는건 일종의 심리치료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마음에 꼭 드는 기타를 사고 기타학원도 알아봤다.
같은 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운전기사 아저씨가 기타를 꽤 잘 치는데 이야기를 꺼내니
이 곳을 추천해 주었다.
MUSICA EXPRESO
기타학원에 처음 간 건 6월 중순이었다.
처음 찾아가본 날은 운전기사 아저씨가 같이 가줬고 학원장님과 아는 사이여서 자연스레 인사도 했다.
하지만 동양인 여자가 와서 기타를 배우겠다는 건 좀 난감했나보다.
표정이 별로 달갑지가 않다....;;;; ㅋㅋ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이 여자 스페인어는 할 줄 알아?" 라고 묻길래
옆에서 듣고있다가 냉큼 끼어들었다.
"나 조금 말할 수 있어. 그리고 지금 너네가 하는 얘기는 다 이해했어"
뭐 아주 반기는 얼굴은 아니었지만 학원장인 펠릭스는 나를 원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고,..
나의 기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실 도미니카 공화국에 와서 한국에서만큼 체계나 규칙을 기대하기는 힘들기에
나의 새로운 일상이 된 기타학원도 그쯤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악기를 배우는건데 말을 좀 못알아 들어도 문제가 되겠어?
라는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 목요일 5시~6시 까지가 내가 학원에 가는 시간이고
나는 기타학원에 가기 시작한 날부터 계속해서 하루에 2-3시간씩 연습을 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듣다가 코드도 따고, 모르는 코드는 찾아내는 둥의 열심을 내면서
물집이 잡힐 새도 없이 기타를 치고 또 쳤다.
기본코드를 다 배우고 마이너 코드도 다 배우고..
일상대화가 아닌 음악용어를 더 많이 쓰는 기타학원에서의 수업은 좀 힘들었지만
거의 같은단어만 쓰니까... 라며 안심을 하고 있었는데..
한달 쯤이 지나고 나자 이론수업을 하기 시작했다..
헐.......
오선 위에 높은음자리표 그려놓고 설명하기 시작하는데...
알아듣는건 Nada. (전혀없음!)
정말 답답했던건, 다 알고있는 내용에 대해서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설명을 듣는 것이었다.
"나 이거 다 알아. 나 한국에서 피아노 오래 쳤었어"
이론선생님한테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계이름을 줄줄줄 박자맞춰가며 내리 읽었더니 이제 그만하라고 한다.
사실... 그냥 기타 치는것만 가르쳐줘도 되는데 왜 이렇게 열심히 가르쳐서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건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
이건 전혀 도미니카스럽지 않잖아!!!!
그리고 얼마 뒤, 다시 시작된 이론수업에서는 코드를 배우기 시작했다.
와우...!
음악용어들에 대해서 선생님이 뜻을 설명해주면 열심히 받아 적어야 한다.
모르는 단어가 더 많지만 가끔 옆에 앉은 다른학생의 노트도 컨닝해가며 열심히 적는다.
피아노 반주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코드를 독학한 나는
우리 기타학원에서 천재 소리도 듣는다. ㅋㅋㅋㅋㅋㅋ
이 학원에 3년이나 다닌 가장 높은 레벨 남학생이 코드를 바꿔적는걸 헷갈려서 계속 틀리자
결국 선생님은 옆에있던 나에게 그 아이를 도와주라고 했다.
(그 남자애가 완전 황당한 표정으로 선생님을 쳐다봤으나 결국 나랑 같이 문제를 풀었음;;;)
음하하!!
3년 된 기타 실기실력이야..
기본코드 뿐만 아니라 어려운 코드들도 척척 잡아내고 있지만..
자기가 치고 있는 C코드가 도.미.솔 이지 파.라.도 인지는 헷갈려하는 아이러니함..;;;;;
그러던 지난 주,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다음 주에 이론시험을 본다는 것...
나는 어쩌라는건지...
어쨌든 나도 이 학원 수강생인데 언어가 아직 부족하다는 이유로 시험을 면제받고 싶지 않았다.
시험을 대비한 이론시간에 열심히 설명을 적어가며 들었는데..
내가 받아적은 이 단어가 과연 사전에 있긴 한걸까... 의문이다.
(혼자서 받아쓰기 시험 보고있음 -_-;;;;)
(↓글씨가 엉망진창인건 급하게 받아쓰기 하는 중이라서 그런거임)
그리고 오늘,
시험날이 되었다.
특별히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떨리지도 않는다.
(자포자기한 상태임)
그래도 얼굴 비추고 시험지에 이름이라도 적어서 내야겠다며 학원에 갔는데..
A4용지 두장에 글씨만 빼곡하게 적혀있다...
코드 적는거라도 있으면 그거라도 적고 나오려고 했더니... ㅈㅈ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름부터 적어놓고 문제를 차분하게 읽어봤다.
- 가장 많은 박자를 가진 음표의 이름은?
- 높은음자리표는 어느키에 있나?
- 마침표가 그려진건 한 마디가 더 있다는 뜻이다 (O/X 문제)
- 음을 내리라는 표시를 뭐라고 부르나?
해석해서 문제 푼 것은 대충 기억나는대로 적은,
문제도 알겠고 답도 알겠는 것들이 있었고...
문제해석 불가능인 것들도 있었다.
뭘 물어보는건지 전혀 알 수 없는 문제에는 그냥 내 맘대로 내가 알고있는 것들을 적었다.
1번 문제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어서 도.레.미.파.솔.라.시.도 를 적었고
앞장에 내 맘대로 적은것이 두 개, 뒷 장에 하나가 더 있었다.
그리고 선생님한테 내고 일어서는데...
우리 선생님...
나 때문에 빵 터지셨다...
1번에 문제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 말도 안되는 도.레.미.파.솔.라.시.도 를 보시고
웃음을 참을 수가 없으셨나보다...
아..... 창피하다... =_=
외국에서 기타학원을 다니며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은 언어의 한계가 아니다.
음악이라는 또 다른 언어로 이어지는 새로운 관계들이다.
오늘 시험을 보면서 기왕 배우는거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음악이론을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번 시험은 공부 열심히 해서 잘 봐야징~ :)
+ 그나저나, 우리동네에 춤 학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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