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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공 체류기

도미니카 공화국 체류기 : 나의 도미니카 가족



<2010년 8월 31일>


내가 세들어 살고있는 주인집 아줌마(마마)가 오랜 휴가를 마치고 지난주 목요일 돌아왔다.
7월 5일부터 8월 26일까지 마이애미에 살고있는 두 딸의 집에서 머무르면서 손녀들의 여름방학을
함께 보내고 거의 두달만에야 집에 온 것이다.

집에는 원래 집주인 아저씨(빠빠)와 마마, 나 이렇게 셋이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마마가 집을 비운 동안에는
일하는 무챠쵸(라프팅)가 부엌에 딸려있는 식모방에서 지내며 아저씨를 챙겨드렸다.
빠빠는 평소 아침 6시 30분쯤 일하러 나갔다가 1시쯤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오고,
다시 3시쯤 일하러 갔다가 밤 9시 15분 정도가 되야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어서 나와는 마주칠 시간이 거의 없다.
(나의 평소 일과는 6시 30분쯤 일어나 8시에 출근을 하고 퇴근해서 집에 오면 4시 30분 정도인데
5시에서 6시 사이에 이른 저녁을 먹거나, 기타학원 수업이 있는 날에는 저녁은 거의 생략한다)
그래서 마마가 함께 있을때는, 빠빠가 집에와도 못나가 보는 경우가 많았다.
늦은 시간인데다가 씻고있는 경우도 있고, 주차를 하고 집안에 들어오는 잠깐의 타이밍을 놓치고 나면
빠빠도 1층에서 고작 5분 정도 있다가 2층에 올라가 버리기 때문에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마마가 거의 두달간 집을 비우는것은 나에게도 큰 부담이 되었다.
내가 아저씨를 위해서 살림을 해주는건 아니지만 매일저녁 인사라도 해야할 것 아닌가..
겨우 인사하는게 뭐가 부담스럽냐고 말할 수 있지만,
마마도 없이 나 혼자있는 집에서 밤에 퇴근하는 집 주인 아저씨한테 인사하는건 부담스럽다.
옷도 갈아입어야 하고 도깨비같은 머리도 좀 묶어야하고..
그렇다고 집 안에 사람이 있는걸 뻔히 아는데 방 안에서 나가보지 않을 수도 없으니,
평소보다 일찍 운동하고 일찍 씻고나서 9시를 기다리고 있다가 빠빠와 인사를 했다.


"Señorita Abigail~ Dime~" (쎄뇨리따 아비가일~ 얘기해~)


항상 "다 좋다~ 별다른거 없다~"고 얘기하고 "돈" 문제에 대해서만 얘기했었던 빠빠와
다른 이야기들을 시작했다.
오늘은 기타학원에서 무슨 노래를 배웠고, 어떤 운동을 했고, 이런 요가동작을 연습한다고 보여주며
떠들다보니 어느날인가는 빠빠가 레쵸사(파파야)를 좋아하냐고 물어봤다.
내가 과일중에 가장 좋아한다고 말하자 레쵸사 쥬스를 만들어 주겠다며 기다리란다.
(그 쥬스는 정말 대단했다! ;;)
또 다른 어느날에는 나도 카레 만든걸 한번 드리고,
아저씨는 질 좋은 망고와 레쵸사를 먹으라고 주시기도 했다.
물 값도 가끔은 깎아서 받기도 하고.. ㅋㅋㅋ
너 해변에 가는거 좋아하니? 수영복 있니? 어디까지 오는 수영복이니? 뭐 이런걸 물어봐서
나를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마마의 부재로 빠빠와 많이 친해졌다.



그런데..
저번에 빠빠가 레쵸사쥬스를 만드는걸 한번 보고나니, 가끔씩 이 집에서 주는 음식을 먹는것이 부담스러워졌다.
레쵸사쥬스는 레쵸사(파파야) 껍질을 벗겨 잘게 자르고, 얼음과 우유, 설탕을 넣어 믹서기에 갈아 만드는데..
빠빠가 얼음판을 꺼내더니 싱크대 개수대에 놓고서 얼음을 깨는것이 아닌가...;;;
하수구 구멍으로 얼음이 들어가서 당연히 쓰지 않을거라고 생각한 얼음을 물에 한번 헹궈내지도 않고
그냥 믹서기에 넣는 모습을 보고, 나는 옆에 있다가 헛구역질이 나왔다.
"부에노"(Bueno_좋아)라며 그 쥬스를 한컵 가득 따라주고는 어서 마셔보라는데
나는 정말 구역질이 나는 것을 참아가며 입에 살짝 대고는 방에 가서 먹겠다고 말하고 몰래 버렸다.
몰랐으면 모를까 보고나서도 그걸 먹지는 못하겠더라...;;;;


마마가 돌아온 지난주 목요일..
저녁 8시쯤 마마가 문을 두들겨 열어보니 스프를 끓였다며 주셨다..
잘게 잘려진 면발도 조금 들어있는 거였는데, 감자, 쥬까, 햄 등등 뭐가 많이도 들어있다.
시간이 늦긴 했지만 방금 만든 따뜻한 음식에 수저를 들었는데..
다 먹어갈즈음 씹은 쥬까가 시큼한것이 상한 거였다..
얼른 뱉어냈지만.. 나 그럼 상한 쥬까로 끓인 스프 먹은거야..? =_=
게다가 바로 옆에 보이는 머리카락 하나.....
도대체 나한테 뭘 먹인거야..? -_-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 나는 화장실을 여러번 가야했다...;;;
마마가 일부러 그런건 아닐테지만..
먹으라고 주는 음식도 반갑지 않다고 생각하며 있었는데..


어젯밤..
이번에는 마마가 레쵸사쥬스를 줬다...
마침 나는 샤워를 막 끝내고 나온터라 다시 뭔가를 먹고싶지 않았고,
내일 아침에 마시겠다며 내 방 냉장고에 넣어놨다.
(결국, 약간 출출했던 더 늦은 시간에 마마가 만든 레쵸사쥬스는 그래도 좀 낫지 않을까 하며 마시고 잤다 ;;;)
그리고 오늘 아침,
씼어놨던 유리컵을 들고 부엌으로 가다가 마마한테 쥬스 맛있었다고 말하자
대뜸, "그거 안버렸어?" 라고 말한다.
내가 펄쩍 뛰면서 맛있게 먹었다고 말하니까 마마가 웃으며 알았다고 한다.

그거 버렸으면 어쩔 뻔 했어...
아마 성격상 버렸다는게 바로 티났을 것이다. ;;;;
마마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저번에 빠빠가 줬던 레쵸사쥬스 버린걸 알았나? =_=;;;



결론적으로 중요한건.
오늘 출근해서..
나는 또 화장실에 갔다....
마마가 주는거 자꾸 먹으면 살이 쏙 빠질것 같다.
나에게 음식을 주시는건 고맙지만.. 그냥 주시지 않는게 더 고마울 것 같다.
배 아프다... 

 




<글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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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나온 아홉명의 여자들 중 한명은 한국인
누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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