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하라바코아
두 달 간의 현지적응훈련 기간 동안
산토도밍고에 있는 에우니쎄의 집에서 생활한 것은
겨우 일주일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산토도밍고에서의 그 열흘 남짓한 시간이
지금도 아주 길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인 것 같다.
산토도밍고의 홈스테이 집에서 일주일을 지낸 뒤
우리는 산토에서 버스로 두시간 반 정도 거리에 있는
'하라바코아'라는 도시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한 달 반 정도 집중적으로 현지어를 배운 뒤,
바로 임지에 배치를 받을 예정이었기에
한국에서 가져온 짐들 중 일부를 챙겨서
하라바코아로 떠나게 되었다.
▲ 위 지도에서 봤을 때 빨간 표시가 되어있는 곳이 하라바코아인데
아래로 이어지는 회색 선의 반대편이 산토도밍고이다.
본격적인 하라바코아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 동안 도미니카공화국 체류기를 쓰면서
당시 함께 파견된 사람들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하라바코아에서의 생활을 떠올려 보니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개인신상이 노출 되지 않도록 가명을 사용하겠다.
(에우니쎄, 조까벨 미안해 ㅠㅠ)
코이카에서 단원을 파견할 때에는
현지에서 어떤 분야의 전문인력을 필요로 하는지 수요조사를 하고
한국에서는 수요조사를 근거로 적절한 봉사단원을 뽑아
한 달 간의 국내훈련을 받고 파견을 했다. (지금은 좀 다른듯)
그래서 한국에서 떠나올 때 혼자 파견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분야는 다르지만 봉사단원을 모집했을 때의 같은 기수 여러명이 함께 파견되게 된다.
우리의 경우는 여자 일곱이었다.
칠공주?
ㅋㅋㅋ
숫자 '7'을 떠올렸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일곱빛깔 무지개색으로
우리들의 이름은 편의상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네이비, 보라로 부르겠다.
나이 순으로 적다보니 제일 막내인 내가 '보라'가 되겠다.
아무튼,
산토도밍고에서 하라바코아로 이동하던 그 날 아침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제 조금 익숙해지려고 하는 산토도밍고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지만 워낙 하라바코아에 대해
공기도 좋고 날씨도 시원한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큰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피난 가는 사람들마냥 한 달 반 동안 생활할 짐을 꾸려
짐가방을 들고 낯선 곳으로 향하는 차를 탔을 때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창 밖의 풍경을 쉴새 없이 눈에 담았다.
나무로 우거진 산들을 지나다 언덕을 하나 넘었을 때
우리는 하라바코아에 도착했다.
도착의 기쁨도 잠시...
우리는 각자 가져온 짐과 함께 한 명씩
각자 한달 반 동안 홈스테이 하게 될 집 앞에 내려졌다.
영영 헤어져 다시는 못 볼 것 처럼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홈스테이 집주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코이카 관리요원님이 동행하여
불편하거나 위험한 것이 없는지 확인해 주셨다.
하지만 나를 내려준 차가 뒷모습을 보이며 떠나갔을 때의 기분이란..
엄마와 처음 떨어져 보는 아이의 심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산토도밍고에서와는 달리
하라바코아에서 만난 집 주인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나 역시 스페인어로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이 매우 적었으며
나 보다도 나이가 어려보이는 (하지만 어린 애가 셋이나 있는)
집주인 '마마'(mama_'엄마'라는 뜻이며 여자 집주인을 '마마'라고 불렀다)가
나보다도 더 난처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데 괜한 오해를 살 수는 없으니
최대한 어색하지 않게 미소를 지으면서 내가 지낼 방을 손가락으로 두 번 가리키고
고개를 옆으로 뉘이고 눈을 살포시 감으며 손을 포개어 볼에 대는 것으로
"나는 지금 방에서 쉬고 싶다"
라는 뜻을 전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눈물이 ㅠㅠ)
다행이도 제대로 전달이 된 것인지 마마는 '오케이'라고 말했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와 짐을 정리했다.
내가 지낼 방에 들어가 보니
문을 열자마자 더블침대가 하나 보이고
방 안에 맞은편으로 침대가 세 개나 더 있었다.
뭐... 뭐지? 뭔가 무서워 ㅠㅠ
방에 침대만 가득한 것을 보고 조금 긴장되기도 하고
거실에 있는 아이들 방을 뺏어 들어온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방에 딸려 있는 화장실은 깨끗했으나
때마침 단수가 되어 물이 나오지 않았고
샤워기 호스가 달려 있지 않은 처음보는 광경에
순간적으로 샤워할 때는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이곳은 거실인데 현관 문 바로 앞으로
발코니가 이어져 있다.
내가 지내게 될 집은 2층이었는데 아래층에는 집주인이 산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아이들의 아빠는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하고
엄마가 아이 셋을 데리고 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발코니 오른쪽 끝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고
왼쪽으로 보이는 쇠창살 달린 창문이 내가 지낼 방에 있는 것이다.
현관 앞에는 탁자와 의자가 있어서
밖에 나와 앉아 있기도 좋았다-
마마는 첫 날 저녁으로 하몬(Jamon_햄)과
쥬까(Yuca_뿌리채소로 감자와 고구마 중간 정도의 맛이나 독특함)
삶은 것을 주었다.
삶은 뒤 버터 범벅이 되어 매우 기름지고
혀가 오그라들 정도의 짠 맛이었으나
생존본능 + 표현의 한계로 인해
"Rico! Muy rico!"(맛있어요! 아주 맛있어요!)를 외쳐가며
꽤 많은 양의 저녁을 싹싹 긁어 먹었다.
마마는 조금 쑥스러운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고
나는 엄지척을 해보였으나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밤새 몸을 뒤척였다.
참고로, 이 날 이후로 매일 저녁은 같은 메뉴였다.
이렇게 두근두근 하라바코아 생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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