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빨래 금지령
하라바코아에서 홈스테이를 할 때에는 하루일과를 마친 뒤
샤워를 하면서 그 날 입었던 옷들을 손빨래 하였다.
도미니카공화국의 무더운 날씨로 인해 옷은 당연히 매일 갈아 입어야 했고,
(경우에 따라 하루에 옷을 몇 번씩 갈아입기도 했다)
원래 하던 속옷 빨래에 얇은 티셔츠 한 장 정도만 더 빨면 되는 것이어서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두꺼운 바지나 잠바 같은 경우에는 매일 빨래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여유로운 토요일 마음을 먹고 열심히 손세탁 하여
1층 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널어놓었다.
ㅋㅋㅋ
이렇게
빨래집게도 없고 옷걸이는 티셔츠를 널어 놓는데 사용하느라
잠바를 이렇게 축 늘어뜨려 놓고는 웃기다며 사진까지 찍은 뒤
방으로 올라가 쉬고 있을 때였다.
"아.비.가.일~~~~~"
1층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일인지 궁금해하며
1층으로 내려 갔는데
"프레델리사. 나 불렀어?"
프레델리사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프레델리사가 나에게 물었다.
"아비. 저 잠바 네가 널어 놓은거니?"
"응."
"어떻게 빨래했니?"
"손으로"
(조물조물 흉내 내며)
"왜 세탁기를 이용하지 않았니?"
"잠바 하나 뿐이어서 괜찮아."
"아비. 다음부터는 손빨래 하지 말고
나한테 주면 세탁기로 같이 세탁 해줄께."
"응? 괜찮아. 내 빨래는 많지 않아."
"안돼. 손빨래 금지야!"
(단호박)
프레델리사는 단호했다.
이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돈을 지불했기 때문에
세탁기를 사용하는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며
절대 절대 절대!!
손빨래를 하지 말라고 말했다.
마당 있는 집의 세탁기.jpg
하지만 나는 고마워 할 수가 없었다.
흔쾌히 알았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주 어릴 적 집에도 있었던
탈수 기능이 옆에 따로 있는 대우 세탁기
그런데..
프레델레사...
지금...
빨래 하고 있는거 맞지..?
빨랫감은 저 물에서 한참을 더 빙빙 돌다가
다시 헹궈지지 않은 채 그대로 옆의 탈수기에 들어갔다가
쨍쨍한 햇볕에 널렸다.
나는 조심스럽게 프레델리사한테 말했다.
"그런데...... 빨래하는 물이......
너무.... 더러워 보여..."
프레델리사는 쿨하게 대답했다.
"저 물은 하늘에서 내려온 물이여서 원래 색이 저런거야."
"응???"
(뭐?? 하늘에서 뭐가 내려와??)
"빗물이야."
"응?????"
(빗물?? 왜 빗물로 빨래를 해???)
"비는 하늘에서 온 물이라 깨끗하지만
빨래에서 더러운게 나오니까 더러운 물이 된 거지.
하지만 괜찮아. 더러운 물들은
탈수기에서 다 짜내서 옷은 문제 없어!
아주 깨끗해!"
"응...???"
(ㅠㅠ)
정말 괜찮은걸까?
ㅠㅠ
태어나서 단 한번도 빗물로 빨래를 한다는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데
왜 빗물을 받아다가 저렇게 빨래를 하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정말 손빨래 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세탁기로 빨래를 해주겠다는 걸까?
혹시 내가 손빨래를 하며
수돗물을 쓰는 것이 아까운건 아닐까?
별의 별 생각을 하면서
이제부터 손빨래는 절대 안된다고
다시 한번 말하는 프레델리사한테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 날 이후로는 샤워를 하며 몰래 손빨래를 하고
방안에 빨래를 널어두게 되었다.
초록언니네 집에 놀러 갔다가
마당에 널려 있는 옷들이 진심으로 부러워 찍은 사진
ㅠㅠ
내 살다살다 손빨래 마음대로 하는것이
부러워지긴 처음이다..
손빨래도 마음대로 못하는
서글픈 생활
ㅜ_ㅜ
왜죠?
왜 손빨래를 하면 안되는거죠?
손빨래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로는
바지와 잠바는 거의 세탁을 하지 않게 되었다.
흙이 좀 묻어도 툭툭 털어서 입는
여유로움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또 한 발자국
도미니카공화국에 가까워졌다.
+
이 에피소드를 두고
이곳 저곳에 하소연(?)을 하다가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빗물로 빨래를 하면 때가 잘 빠진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빗물로 빨래를 하는 것을 두고
하라바코아에서 프레델리사의 호의를 의심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프레델리사 미안해!!
하지만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백프로 몰래 손빨래를 할 것 같다는 건 안비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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